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닷소 다쿠야 (문단 편집) == 생애 == 1964년 6월 10일, [[이와테현]] [[모리오카시]]에서 태어났다. 이와테현립 모리오카다이이치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다. 1988년 4월에 [[일본 외무성|외무성]]에 입성하였고, 1991년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연구 고등대학원을 수료한다. 이후 주미 일본 대사관과 주싱가포르 일본 대사관의 서기관, [[외무성]] 경제국을 거쳐, [[주요 7개국 정상회담]]에서까지 근무하게 된다.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 [[신진당]] 소속으로 [[이와테현 제1구]]에서 [[중의원]]으로 당선된다. 이후 [[오자와 이치로]]의 최측근이 되고, 2007년까지 중의원 4선을 하게 된다. 이와테현지사에 출마하기 위해 중의원 총선거에 불출마했고, 2007년 4월 30일 이와테현지사에 당선된다. 다만 다른 야당과의 협조를 위해 [[무소속]]으로 [[민주당(일본 1998년)|민주당]]의 지지를 받으며 당선됐다. 지사 취임 이후에는 [[경마]]를 존속시켰다. 또한 [[외국인 참정권]]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공식적으로 [[제노포비아]]에 대해 경계한다고 발언하였다. 이와테현지사 취임 후 [[민주당(일본 1998년)|민주당]] 당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신이 속한 계파의 회장인 [[오자와 이치로]]가 [[국민 생활이 제일]]이라는 정당을 만들고 민주당을 탈당하자, 닷소는 이에 동조하며 민주당을 탈당했다. 다만 미래당에 입당하지는 않고, 지금까지 쭉 무소속으로 정치 생활을 한다. 2015년 18회 이와테현지사 선거 당시 [[민주당(일본 1998년)|민주당]], [[유신당]], [[일본 공산당]], [[생활당]], [[사회민주당(일본)|사회민주당]]의 지지로 현지사가 되었고, 2019년 19회 이와테현지사 선거 당시에는 [[입헌민주당(2017년)|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2018년)|국민민주당]], [[일본 공산당]], [[사회민주당(일본)|사회민주당]]의 지지로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의 오이카와 아쓰시 전 이와테현 의회 의원을 꺾고 4선을 했다. 일본 NHK 이와테현 뉴스채널은 3일 닷소 다쿠야 이와테현 지사가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발표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닷소 지사는 이날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뒤 지난 1일 일본 정부가 발표한 수출규제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는 “한국의 반도체 메이커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면서 “일본 반도체 업체와 라이벌이지만 매우 중요하다. 서로 경쟁하고 있는 동료”라고 말했다. 닷소 지사의 소신 발언은 현내 [[키타카미시]]에 일본 최대 반도체 기업 도시바메모리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직격탄을 맞았던 이와테 현의 상황이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로 인한 부메랑 악재로 또다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닷소 지사의 소신 발언에 [[넷우익]]이 발끈했다. 일본 우익 세력의 인터넷 본거지인 [[5ch]](5채널) 커뮤니티에는 심지어 닷소 지사를 겨냥한 살해 협박까지 나왔다. 이와테현이 코로나19 확진자가 적자 회의에 대해 닷소 다쿠야 이와테현 지사는 지난 10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해야 할 검사는 하고 있다”면서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아베 정권이 추진 중인 검찰 정년 연장과 관련하여 그보다 [[코로나19]] 방역에 집중해야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https://www3.nhk.or.jp/news/html/20200515/k10012431571000.html?utm_int=news-ranking_social_list-items_00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